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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경 - 돼지국밥을 위한 기도시(詩)/성선경 2016. 9. 2. 14:25
나는 이런 사람이 되게 하여주소서
삼천 원짜리 돼지국밥 앞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참 맛있겠다고 입맛을 다시며 눈웃음을 칠 수 있는 사람
내 앞의 사람에게 고기 한 점이라도 더 권할 수 있는 사람
새우젓을 권하며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참 좋아하셨다고
아주 오래된 전설을 얘기하듯 말할 수 있는 사람
내 앞자리 어른의 좀 길다 싶은 잔소리도
아직은 들을 만하다고 돼지국밥 한 그릇 잘 먹은 사람처럼
다 듣고도 한 오 분쯤 더 땀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주소서
오뉴월 한증의 날에도 국밥 한 그릇을 잘 먹고 나면
삼복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의 땀을 닦고
얼음조각이 둥둥 뜨는 냉수 한 컵 잘 마신 것처럼
강바람이 불 듯 시원히 웃을 수 있는 사람
내 아들과도 다시 오고 싶다고 주인에게 인사할 줄 아는 사람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은 빈 그릇을 미안해하며
너무 맛있었다고 값을 치루면서도 감사해하는 사람
돼지국밥에게도 신성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 보담도 더
돼지국밥 한 그릇만큼이라도
남에게 넉넉한 사람 되게 하소서.(그림 : 허영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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