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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 저 수컷을 매우 쳐라시(詩)/이정록 2016. 3. 17. 20:57
어물전이며 싸전, 골목골목 좌판을 펼쳐놓고있는 사람들, 십중팔구 여자다.
여자라고 부르기에 뭐한 여자다.
서로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심심찮게 이 여편네 저 여편네 악다구니를 끼얹는,
세 바퀴 반을 돌린 털목도리들이다.
생선 비늘 덕지덕지한 스폰지 파카들이다.
좌판이 키워왔는지 궁둥이를 중심으로 온몸이 뭉쳐져 있다
저 자리들을 모두 수컷들로 바꿔놓고 싶다.
마늘전 김봉길 씨와 옹기전 심정구 씨만 빼고, 썬그라스와 방수 시계를 파는 서부사나이만 나두고,
종일 내기 윷 노는 담뱃진들과 주정이 천직인 저 가래덩이들을
검정 비닐봉지에 한 열흘 집어넣었다가 좌판에 꿇어앉히고 싶다.
나오자마자 파주옥이나 당진집으로 달려갈 저 수컷들을 한 장 토막이라도 돼지쓸개처럼 묶어 말리고 싶다.
선거 철에만 막걸리 거품처럼 부풀어오르는 저 수컷도 아닌 수컷들을
외양간 천장이나 헛간 추녀에 매달아 놓고 싶다
궁둥이들의 가슴을 보아라.
밥이란 밥 다 퍼주고, 이제 구멍이 나서 불길까지 솟구치는 솥 단지가 있다.
(이 땅의 여인들에게선 불내가 난다. 수컷들에게서도 설익은 불내가 나지만,
그것은 오래 쓰다듬어주기만 한 여인들에게서 옮겨 간 것이다.)
깔고 앉았던 박스를 접고 천 원짜리 몇을 다듬고 있는 갈퀴 손으로 저 잡 것들의 버리장머리부터 쳐라.
그리하여 다리몽둥이 절룩거리는 파장이 되게 하라.
돌아가 저녁상을 차리고, 밤새 또 술 주정을 받아내야 하는 솥단지들이여.
삼밭 장작불처럼, 이 수컷을 매우 쳐라
(그림 : 김의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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