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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 보리앵두 먹는 법시(詩)/이정록 2016. 5. 14. 18:01
앵두를 오래 먹는 법은 따먹지 않는 거다
한 주먹 우물거려도 앵두씨나 가득할 것이다
싸돌아다니는 닭들 목구멍이나 막히게 할 것을
툇마루에 그림자 하나 앉혀놓고 눈으로 먹는 거다
보리알만해진 눈곱 곁에 앵두알 눈동자를 짝지우는 거다
눈동자 속으로 날아드는 새들의 노랫소리까지 받아먹는 거다
앵두 뺨을 훔치는 소만 망종의 달빛까지 핥아먹는 거다
앵두 뺨과 앵두 이파리의 솜털이 내 귓불에도 돋아나게 하는 거다
그리하여 달빛 앵두인 양 날 훔쳐보는 사람 하나 갖는 거다
나 몰라라 슬그머니 앵두 이파리 뒤쪽에 숨어
혼자 날아온 새처럼 깃이나 다듬는 거다
처음 만나는 눈길인 양 쌍꺼풀만 깜작이는 거다
돌아앉아 앵두가 떨어지지 않을 만큼만 나직이 우는 거다
(그림 : 이정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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