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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록 - 왜가리
    시(詩)/이정록 2015. 7. 16. 15:38

     

    저수지 비탈 둑에서 뛰어다니던 왜가리 때문에 엄청 웃은 적 있지?

    메뚜기 잡아다 새끼 주랴 제 헛헛한 허구리 채우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술 취한 막춤을 보며 박장대소했지.

    부리나케 일어나서는, 밀친 놈 없나? 비웃는 놈 없나? 두리번거리던 꼬락서니에,

    '술 좀 줄여요. 왜가리 꼴로 훅 가는 수가 있어요.' 내게 쏠리던 눈초리가 떠오르는구나.

     

    왜가리도 가을 지나 겨울 오면 차가운 물에 발 담그고 물고기를 기다리지.

    사내란 저런 구석이 있어야 해.

    시린 발에 온 정신을 집중시키고 지느러미가 전해주는 미세한 떨림을 읽는거지.

    눈은 시린 구름 너머에 던져놓고 의젓한 품새로 뒷짐 지고 말이여.

    물고기가 가까이 다가오면 단 한 번 고개 숙이고는 다시 먼 하늘이나 바라보지.

    물속 하늘은 가짜라서 진짜 하늘을 보며 살아야 한다는 거 아니겄어?

     

    사내란 탁한 세상에서 탁발을 하고는 구름 너머 시린 하늘로 마음을 씻지.

    식구들 뱃속 채워주는 일이라면 시궁창에 발 담가도 되는 거여.

    사내는 자고로 연지(蓮池) 수렁에 서 있는 왜가리 흰 연꽃이여.

    (그림 : 김동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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