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태 - 조금새끼시(詩)/김선태 2016. 1. 10. 09:37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을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일까요?
아무래도 그건 예나 지금이나 이 한마디 속에
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 있기 때문 아니겠는지요.
(그림 : 김형구화백)
'시(詩) > 김선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선태 - 무안 갯벌 (0) 2016.04.26 김선태 - 주꾸미 쌀밥 (0) 2016.04.24 김선태 - 이제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지 않네 (0) 2015.05.22 김선태 - 둥근 것에 대한 성찰 (0) 2014.11.22 김선태 - 팽이 (0) 2014.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