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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태 - 둥근 것에 대한 성찰
    시(詩)/김선태 2014. 11. 22. 14:03

     

    - 정도리 몽돌밭論

     

    겨울 정도리 바닷가에 가보았다. 불혹토록, 지치고 찢긴 희망처럼 날리는 눈보라를 따라갔다. 무수하다는 돌멩이들이 둥그렇게 몸을 맞대고 있는 정도리 몽돌밭. 모난 돌멩이 하나로 끼어 이 적요(寂寥)의 겨울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직 하나도 거둬들이지 못한 삶의 물음표 같은 부표들 바다에 하얗게 띄우고 소나무숲에 찢어지게 열린 바람소리 본다. 눈 감고 누워 있으면 몽돌들의 울음소리 바닷게들처럼 귓속을 들락거리고 있다.

     

    파도가 말을 가르치는 정도리 바닷가. 제대로 발음이 될 때까지 사정없이 돌멩이들의 귀썀을 후리는 소리로 종일토록 정도리 바닷가는 때글때글 깨어 있다. 때로는 가슴을 치는 때로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소리로 돌멩이들은 끊임없이 제 모난 살점을 덜어내며 둥글고 단단해진다. 찌그러진 불협화음을 받아 얼른 둥글게 오무라뜨리는 저 소리의 반복 교차. 랜 시간의 퇴적을 쌓고 또 부수는 저 울음 속에 정도리 바닷가의 내밀한 세계가 있다. 서러움 따위를 다 눌러 죽인 끝에야 찾아오는 정갈한 소리의 비밀이 있다.

     

    정도리 바닷가 몽돌들은 저마다 색깔과 무늬가 서로 다르다. 그러나 모두가 둥글다. 서로에게 둥글어서 아무렇게나 뒹글어도 아프지 않는 것들이 함께 모여 한 세상을 이룬다. 시퍼렇게 침입한 바다를 팔 벌려 감싸는 해변의 끝에서 끝까지를 맨발로 걸어본다. 몽돌들의 이마를 짚으며 걸어가노라면 단단하게 여문 말씀들이 차례로 발바닥에 와 닿는다. 그것들은 모난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한다. 모든 둥근 것들은 모난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가만 들여다보면 다채로운 세월의 물결무늬 선명한 그것들은 가끔씩 들여다보는 자의 얼굴을 되돌려 주기도 한다. 저마다 있어야 할 자리를 알아 구계(九階)의 질서로 빛나는 몽돌들, 가장 몸이 가벼운 것들이 바다 깊숙이 유영하리라.

     

    다시 정도리 바닷가에 굵은 사유의 눈발이 치고 있다. 이제 파도는 무지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으며 몇 번이고 타이른다. 오래 절망을 견딘 자만이 둥글고 단단한 희망 하나를 품을 수 있다고, 뼈 시린 바닷물에 깊게 몸 담근 자만이 비로소 아름다운 진실 하나를 건져낼 수 있다고, 돌아가라 돌아가라 되뇐다. 이윽고 저물 무렵, 정도리 바닷가에 동그란 해가 걸린다. 각진 마음의 기슭을 물들이며 환하고도 따스한 상처가 걸린다. 내일 새벽이면 또 저 몽돌들이 더욱 차고 정갈한 목소리로 다도해 전체의 섬들을 불러 깨우리라.

    (그림 : 한형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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