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두침침해진 쉰을 밝히려고 흰머리가 등불을 내걸었다
걸음이 굼뜬 쉰,
할 말이 막혀 쿨럭쿨럭 헛기침을 하는 쉰,
안달이 나서 빨리 가보려는 쉰을 걸고넘어지려고 여기저기 주름이 매복해 있다
너무 빨리 당도한 쉰,
너무 멀리 가버린 쉰,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할까봐 하나둘 이정표를 심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댈까봐 고랑을 몇 개 더 냈다
그사이 거울이 게을러졌다
빈둥빈둥 거울이 몰라보게 늙었다
침침하게, 쉰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눈을 찡그리고 있다
저를 쳐다보지 않는다고 고함을 내지르고 있다
뿌리치고 나오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눈이 자꾸 어두워져 거울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
보다 못한 거울이 흰머리를 하나씩 뽑아주고 있다
(그림 : 최광선 화백)
'시(詩) > 최영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영철 - 나무는 (0) 2015.08.28 최영철 - 연탄 (0) 2015.07.20 최영철 - 촛불에게 (0) 2014.11.17 최영철 - 서해까지 (0) 2014.11.17 최영철 - 강 (0) 2014.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