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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 촛불에게시(詩)/최영철 2014. 11. 17. 16:51
누가 빌다 간 꺼진 촛불에 불붙이며
저에게는 한 푼도 복을 주지 마시라고 빕니다.
찬란한 환희의 속세만 있어도 행복이오니
제발 복이 있으시거든
손톱만큼이라도 촛불에게,
땅에 내려앉지 못해 하늘을 넘보는
다만 눈물로 포효하는 촛불에게 주소서.
다시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이미 주신 복락을 다 쓰기에도 불행이오니
작은 바람에도 가물거리는
여린 소망을 보소서.
두 개나 뚫린 눈을
캄캄한 촛불에게,
두 개나 열린 귀를
우두커니 앉은 촛불에게,
두 개나 뻗은 손바닥을
아무것도 만질 수 없는 촛불에게,
천 갈래 만 갈래 펄럭이는 마음 거두어
촛불에게 주소서.
당신의 손길로 끄신 이 촛불은
아무리 그러셔도 한 번 토라지지 않고
불붙이면 또 불붙습니다.
다 타버릴 때까지 타야겠다고
다시 심지를 세웁니다.(그림 : 곽호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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