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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알 여물기 훨씬 전부터
겨우 물알이 든 보리이삭을 잎사귀째 잘라
죽을 쑤어 먹었다 그게 청맥죽이다
오랜만에 곡기 든 죽을 먹으니
별똥 떨어지듯 눈물이 떨어진대서
별똥죽이라고도 했고, 눈물 섞어 먹는대서
젊잖게 옥루죽이라고도 했다
물알이 틉틉해진 보리이삭을 따서
가마솥에 삶아내어 말려 바순 게
파렇게 쫄깃거리는 보리민대다
아이들은 물알이 더 틉틉한 이삭을 골라
어른들 몰래 끼리끼리 구워 먹었다
불에 그슬려 구워낸 뜨거운 보리이삭을
손바닥에 비벼서 후후 불어낸
그 퍼런 보리알도 보리민대다
손바닥에 묻은 껌댕이가 꺼멓게
입 언저리에 묻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보리민대를 허겁지겁 씹어먹었다
며칠만 지나면 토실토실한 알보리밥을
고봉으로 꾹꾹 눌러 배 터지게 먹으리라
진달래꽃 따먹으며 허천나던
지긋지긋한 봄날도 이제는 끝, 아이들은
보릿고개의 마지막 먹거리
행복한 보리민대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손바닥 껌댕이를 옆엣놈 앞엣놈 낯바닥에
다투어 처바르며 낄낄거렸다(그림 : 박준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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