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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양 - 보리민대
    시(詩)/정양 2015. 6. 16. 15:16

     

     

     

    보리알 여물기 훨씬 전부터
    겨우 물알이 든 보리이삭을 잎사귀째 잘라
    죽을 쑤어 먹었다 그게 청맥죽이다
    오랜만에 곡기 든 죽을 먹으니
    별똥 떨어지듯 눈물이 떨어진대서
    별똥죽이라고도 했고, 눈물 섞어 먹는대서
    젊잖게 옥루죽이라고도 했다


    물알이 틉틉해진 보리이삭을 따서
    가마솥에 삶아내어 말려 바순 게
    파렇게 쫄깃거리는 보리민대다
    아이들은 물알이 더 틉틉한 이삭을 골라
    어른들 몰래 끼리끼리 구워 먹었다
    불에 그슬려 구워낸 뜨거운 보리이삭을
    손바닥에 비벼서 후후 불어낸
    그 퍼런 보리알도 보리민대다
    손바닥에 묻은 껌댕이가 꺼멓게
    입 언저리에 묻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보리민대를 허겁지겁 씹어먹었다


    며칠만 지나면 토실토실한 알보리밥을
    고봉으로 꾹꾹 눌러 배 터지게 먹으리라
    진달래꽃 따먹으며 허천나던
    지긋지긋한 봄날도 이제는 끝, 아이들은
    보릿고개의 마지막 먹거리
    행복한 보리민대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손바닥 껌댕이를 옆엣놈 앞엣놈 낯바닥에
    다투어 처바르며 낄낄거렸다

    (그림 : 박준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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