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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천 - 봉식이의 밥시(詩)/정윤천 2015. 6. 11. 11:32
봉식이의 밥 한 그릇 보았습니다
엽차 놓고 가는 뻣센 말투에 서린 멀고 가난한 그의 고향
필시 한때는 그가 목욕탕의 때밀이였다는 걸
여인숙의 조바였다가 시장통의 배달꾼이기도 했다는 걸
생채기 많은 그의 손등어리가 들켜주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어쩌다 밥집의 똘마니로 나와 만나져서
손님 끝나고 때늦어 제 앞에 돌아온 그의 밥 보았습니다
등쳐먹고 빼앗아 먹는 밥
헌 밥 주고 새 밥 바꿔 먹는 밥
놀면서 헤헤거리면서 얼렁뚱땅 삭이는 밥
너무 많이 우겨넣어 결국엔 게워내야 하는 밥
이런 밥들 처처에 자꾸만 겪고 살다가
그날 외지 갔다 오는 늦은 밥집에서 그의 밥 만났습니다
보란듯이 그 밥에서 김이 오르고 깍두기 우적우적 입맛나서
봉식이 고픈 뱃구레 빵빵히 가득 채워두는 듯싶었습니다
내 밥 뒤에서, 그의 밥 틀림없이 트림도 우렁차고
나는 다만 그의 밥 속에 따뜻한 희망이 오래 식지 않길
말없이 다만 빌어주고 나왔습니다
(그림 : 김계선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