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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천 - 한평생
    시(詩)/정윤천 2015. 6. 11. 11:26


     

     

    - 어머니 하나

     

    울 엄니는 열아홉 봄날 아침에 먼 길을 오셨답니다

    그날 아버지네 마을의 햇볕들은 참으로 따뜻이 눈에 부셨고

    마당가 꽃잎 틔운 살구꽃 그늘

    그 아래 소년처럼 웃고 서 계셨던

    아버지의 처음 모습을

    울 엄니는 지금도 총총 기억하고 계신답니다

     

    달뜬 울 엄니의 귀언저리에

    홍시빛 부끄러움의 찐한 물이 들고

    물든 그 가슴을 열어 난생 처음인 아버지를 맞던

    첫날밤, 뒤채이며 새운 이른 새벽참엔

    암도 모를 눈물도 한줄금 떨궜더랍니다

     

    그렇게 하여 울 엄니는

    그 집의 감나무 가지 하나 이쪽에서부터

    저쪽의 살구나무 가지 하나 그 거리만큼

    넉넉한 빨랫줄을 한 줄 내걸었더랍니다

     

    빈 빨랫줄 위로 울 엄니의 평생의 날들이

    물기 많은 빨래가 되어 지나갔는데

    저 먹을 것 없었던 날들도 가고

    저 깜깜밤중이었던 날들도 가고

    아! 그랬답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구속의 마음으로

    당신이 매단 사랑에의 끈, 한생애의 매듭이었더랍니다

     

    어쩌다 우리들 귀향 때면 울 엄니는 아직도

    삭은 빨랫대 위에

    지금은 당신 자신이 물기 빠진 빨래가 되어

    허옇게 나부끼고 계신답니다

    (그림 : 류건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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