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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이제 오지 않았지
하역장 앞의 밥집들은 문을 닫았고
삐비꽃이 허연 그날의 언덕 위에 서서
나직하게 멀리 저쪽을 불러도
공산처럼 컴컴한 목청으로
늙은 똥개 한 마리 온 밤을 울어주었을 뿐
보름달 봉긋한 가슴의 옛 누이 하나
댓잎 술렁이는 삽짝 앞에
그때처럼 하얀하니 웃어주지 않았지
먼지 부는 정미소 골목 바람 찬 공터 위에는
깨진 소주병만 하나
취한 인부의 악다구니도 들리지 않고
불 내린 역사의 적막 곁으로 기차는 오지 않았지
누군가 일구다 떠난 빈집의 텃밭가에는
절로 자란 마늘꽃만 몇 잎 허옇게 머리를 풀고
새로 난 신작로를 따라 하행의 밤차 한 대가
머언 하행 속으로 사라져 이내 보이지 않을 때
까지기차는 이제 다시 오지 않았지.
(그림 : 김지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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