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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가림 - 깨어진 거울
    시(詩)/이가림 2015. 5. 30. 09:55

     

     

    고 가시내 있었잔여 왜

    쬐끔 오드리 햅번같이 생겼다고 해서

    우리가 꽁무니 뒤쫓아댕기며

    무던히도 꼬실라고 해쌓던

    고 불여우 말여

    그 무렵 국어시간에 김해강 선생한테서

    우리가 막 가시리를 배울 때였응개

    그걸 뽄따가지고

    ‘꼬시리 꼬시리잇고, 불여우 꼬시리잇고

    날러는 어디살라하고, 바리고 꼬셔지잇고’

    어쩌고 서로 다투어 장난치게 만든 최명숙이 기억나지

     

    근디 고 가시내를

    요전날 서울 올라갔다가

    광화문 지하도 네거리에서

    참말로 우연히 십 몇년만에 만난거야

    첨에는 잘 몰라보것더라고

    워낙 세월이 지나다본개로

    주름살도 꽤 많이 생기고 그래서 말여

    좌우당간 오랜만에 만났응개

    차나 한잔 하자고해서

    그 근처 제일 가까운 찻집으로 일단 갔지

     

    근디 얘기를 나누다본개로

    고 가시내의 인생 연속극을 대강 알게 된 거여

    해병대 대윈가 시집가 살다가

    고넘이 뭔 사업인가 함서

    몽땅 말아먹어버린 데다가

    툭하면 주먹다짐을 하는 고약한 버르장머리 땜에

    도저히 못 살겠어서

    깨끔하게 이혼을 해번지고서

    시방은 보험 설계사 하면서

    홀어미랑 힘들게 둘이서 산다는 거야

    그럼서 날더러

    만난 김에 암보험 같은 거 하나 들어달라고

    처억 달라붙는 거야

    아아, 우리들 희미한 옛사랑의 오드리 햅번

    그 영원한 거울이

    요로코롬 속절없이 깨져버리다니!

    (그림 : 류은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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