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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져야할 것이 없는데도
느린 걸음에는
두 손이 저절로 허리에 얹힌다
져야 할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무엇을 져야 할 나이가 됐다는 것일까
뒷짐 지는 걸 아내가 한사코 말리는 까닭은
늙은 냄새나는 남편이 싫다는 거겠지만
사람이 신록처럼 들이치고
어둠이 꽃처럼 피는 길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뒷짐을 지는 것이다
활갯짓에 밀려나
뒷덜미에 매달려 있던 늙음이
등허리에 쏟아져 내려
느린 걸음과 걸음 사이
나도 모르게 받아 업는 시늉을 해보는 것이다
하짓날,
뒷짐을 진 앞산 능선이
무엇을 업어도 슬픈 얼굴인 지게처럼
느린 저녁을 건너오고 있다
(그림 : 김대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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