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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근 - 당신의 날씨시(詩)/시(詩) 2015. 5. 9. 22:00
돌아누운 뒤통수 점점 커다래지는 그늘
그 그늘 안으로 손을 뻗다 뻗다 닿을 수는 전혀 없어
나 또한 돌아누운 적 있다
서로가 서로를 비출 수 없어 나 또한 그만 눈 감은 적 있다
멀리 세월을 에돌아 어디서 차고 매운 바람 냄새 훅 끼쳐올 때
낡은 거울의 먼지 얼룩쯤에서 울고 있다고
당신의 기별은 오고
갑작스러운 추위의 무늬를 헤아려
되비추는 일마저 흐려진 아침
하얗게 서리 앉은 풀들의 피부에 대해서 안부를 묻는 일도
간밤 산을 내려와 닭 한 마리 못 물고 간
족제비의 허리 그 쓸쓸히 휘었다 펴지는 시간의 굴곡에 대해서 그리워하는 일도
한 가지로, 선득한 빈방의 윗목 같을 때, 매양 그러기만 할 때,
눈은 내려 푹푹 쌓이고 쌓이다 쌓이다
나도 당신의 기별도 마침내 하얘지고 그만 지치고 지치다 지치다
봄은 또 어질어질 어질머리로 들판의 주름으로 와서
그 주름들 사이로 꽃은 또 가뭇없이 져 내리고
꽃처럼도 나비처럼도 아니게 아니게만 기어이 살아서
나 또한 뒤통수 그늘 키우며 눈도 못 뜰 세월
당신은 또 무슨 탁한 거울 속에서나 바람 부는가 늙고 늙는가
문득 그렇게 문득문득만 묻고 물은 적 있다
있고 있고 있고만 있다
(그림 : 안기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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