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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호 - 틈이라는 잎시(詩)/시(詩) 2015. 5. 7. 13:53
돋아나는 새잎은
묵은 것을 새어 나가게 하는 틈
오랜 독에는 시름에 꺾인 잎의 무늬처럼
실금으로 새잎으로 돋아나 있다
작은 금 하나가 내부를 텅 비게 할 수도
염분 밴 시간들
한쪽으로 치워 놓았다
더 이상 발효 없는 생각, 내용 없이 들어 있다
저 잎 틈으로 드나드는 것
간장 위에 떠 있던 짠 달은 어디로 갔을까
일렁이던 간장독 안의 흰 달
발 없는 것만 잠겼다 가던 곳
나뭇잎 소리, 산새 소리가 장아찌마냥 박혀서 푹 익어가던 날이
다 새어 나간 그믐의 한 낮
발 없이 왔다 간 것
환한 달 건져 그 빛 비추어 흔적도 없이 돌아간 옛일들
쪼개진 허공엔 나뭇잎이 거미줄에 잠겨 있다
이제는 그늘만이 발효되는 빈 독
숱한 금으로 내 쓴맛도 새어 나갔다
(그림 : 안창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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