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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경덕 - 술국
    시(詩)/마경덕 2014. 10. 22. 16:44

     

     

    화병(火病) 난 할머니 일찌감치 선산으로 도망쳤다.

    할머니를 놓친 할아버지 낮술 자시고 개골창에 처박혀

    얼굴 딱지 굳기도 전 다리에서 실족했다.

    절뚝절뚝 주전자 들고 술도가에 가는 할아버지.

    이놈의 영감탱이! 죽은 할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벌초 간 할아버지 상석을 베고 누워 한 되짜리 소주병 입에 물고

    주절주절 끝도 없는 노래를 흘렸다.

    지겨운 영감탱이! 무덤 속 할머니 맨발로 옆 무덤으로 피신했다.

     

    밤새 할머니를 앉혀두고 뭉친 속을 푸는 할아버지.

    참다못한 할머니가 술상을 뒤엎고 뒷산으로 달아나면

    찬 마룻바닥에 쓰러져 코를 고는 할아버지, 에구, 저 화상.

    죽은 할머니가 담요 한 장을 끼고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에미야, 술국 좀 끓여라. 황태 한 마리 잡아 무 넣고 시원하게 끓여라.

    큰어머니 퍽퍽 방망이 내리친다.

    이놈의 북어야, 니가 술 사줬지? 니가 술 따라 줬지?

     

    부글부글 끓는 며느리, 화덕에 술국 넘친다.

    에미야, 해장국이 왜 이리 밍밍하냐? 하루에도 몇 차례 잔소리가 문턱을 들락거린다.

    어머니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어머니는 십 년 전에 세상을 뜨셨잖아요.

    에구, 이년의 팔자 맘 놓고 죽을 수도 없네.

    술 냄새도 못 맡는 죽은 할머니가 또 술상을 들고 뒷방으로 들어간다.

    (그림 : 권영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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