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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경덕 - 시골집 마루
    시(詩)/마경덕 2014. 10. 30. 19:55

     

    마루는 나이를 많이 잡수신 모양입니다
    뭉툭 귀가 닳은 허름한 마루
    이 집의 내력을 알고 있을 겁니다
    봄볕이 따신 궁둥이를 디밀면
    늘어진 젖가슴을 내놓고, 마루귀에서
    이를 잡던 쪼그랑 할멈을 기억할 겁니다 
    입이 댓발이나 나온 며느리가 아침저녁
    런닝구 쪼가리로 박박 마루를 닦던
    그 마음도 읽었을 겁니다
     
    볕을 따라 꼬들꼬들 물고추가 마르던 쪽마루
    달포에 한 번, 건미역과 멸치를 이고 와
    하룻밤 묵던 입담 좋은 돌산댁이 떠나면
    고 여편네, 과부 십 년에 이만 서 말이여
    궁시렁궁시렁 마루에 앉아 참빗으로 머릴 훑던
    호랑이 시어매도 떠오를 겁니다
    어쩌면 노망난 할망구처럼 나이를 자신 마루는
    오래전, 까막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눈물 많고 간지럼을 잘 타던 꽃각시
    곰살맞은 우리 영자고모를 잊었을지 모르지만,
    걸터앉기 좋은 쪽마루는
    지금도 볕이 잘 듭니다
    마루 밑에 찌든 고무신 한 짝 보입니다
    조용한 오후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마루에 봄이 슬쩍 댕겨갑니다

    (그림 : 이종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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