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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 염천(炎天)시(詩)/마경덕 2014. 10. 22. 16:22
산기슭 콩밭에 매미울음 떨어진다
울음을 받아먹은 밭고랑 열무 바짝 약이 올랐다
상수리 그늘에 앉아 쓰르 쓰르
속 쓰려, 쓰려
혼자서는 속 쓰려 못산다고
짝을 찾는 쓰르라미 울음이 대낮 콩밭보다 뜨겁다
이놈아 그만 울어!
불볕에 속곳까지 흠뻑 젖은 할망구
등 긁어줄 영감 지심 맬 딸년도 없어 더 속이 쓰리다
호미 날에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떨려 나가고
청상으로 키운 아들이 죽고 콩밭짓거리로
김치 담궈 올린 외며느리에게서 떨려 나온 할멈도
쓰름쓰름 다리 뻗고 울고 싶은데
그동안 쏟아버린 눈물이 얼마인지, 평생 울지 못하는
암매미처럼 입 붙이고 살아온 세월
슬픔도 늙어 당최 마음도 젖지 않고
콩 여물듯 땡글땡글 할멈도 여물어서
이젠 염천 땡볕도 겁나지 않는다
팔자 센 할멈이나 돌밭에 던져지는 잡초나
독하긴 매한가지
살이 물러 짓무르는 건 열이 많은 열무
손끝만 스쳐도 누렇게 몸살을 탄다
호랭이도 안 물어가는 망구도 살이 달고
열무같이 풋내 나던 시절이 있었던가
폭염 같은 세월에 쪼글쪼글 졸아붙은 할망구
생전에 영감도 못 본 엉덩이를 훌러덩 까고 앉아
밭고랑에 쫄쫄쫄 오줌을 눈다
오줌발에 발등이 젖은 참나무숲은
산그림자 따라 슬금슬금 콩밭으로 내려오고
쓰르……쓰르……쓰르…
호미 날에 울음이 뚝 잘렸다
해는 식어도 고랑 고랑 펄펄 끓고
하루치 울음을 퍼낸 뒷산이 적막하다
지심 - `풀(草)`의 전라도 사투리
콩밭짓거리 - 콩밭 고랑 사이에 심은 야채, 주로 김칫거리를 말함 . 전라도 사투리.(그림 : 김대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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