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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경덕 - 빈 방
    시(詩)/마경덕 2015. 2. 10. 11:07



    우묵한 집,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누가 살다 갔나. 오래된 적막이 나선형으로 꼬여 있다.

    한 줌의 고요, 한 줌의 마른 파도가 주홍빛 벽에 걸려 있다.

    조심조심 바다 밑을 더듬으면
    불쑥 목을 조이는 문어의 흡반, 허둥지둥 불가사리에 쫓겨 참았던 숨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뽀글뽀글 물갈피에 쓴 일기장을 넘기면…

    빗장을 지른, 파도 한 방울 스미지 않는 방.

    철썩 문 두드리는 소리에 허리 접힌 불안한 잠이 있고.

    파도가 키운 둥근 나이테가 있고

    부우― 부우― 저음으로 가라앉은 호른소리, 떨리는 어깨와 부르튼 입술도 있다.

    모자반숲 파래숲 울창한 미역숲이 넘실대고

    프렌치호른에 부르르 바다가 젖고 밤바다의 비늘이 반짝이고

    외로운 나팔수가 살던 방, 문짝마저 떨어져 나간 소라껍데기,

    잠시 세들었던 집게마저 떠난 집, 컴컴한 아가리를 벌리고 무엇을 기다리나.

    모래밭 적막한 방 한 칸. 

    (그림 : 차일만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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