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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일 - 약쑥 개쑥시(詩)/박태일 2014. 9. 23. 00:11
팔령치 넘어 전라도
전라도 지나 지리산
뜻 높은 절집에 뜻 높은 스님은 없고
뒤듬바리 벅수 짝으로 번을 선 곳
실상사 건너 상황에 가자
닥껍질 삶은 물이 돌돌 도랑을 데우는 골짝 마을
이름도 성도 자식 없어 나선 시집살이 욱동이 동생 친정 일도
드난살이 삼십여 년 홀로 조금밥 헤며 다 솎아버린 조씨 할머님은
마당귀에 다소곳 숨어 죽은 약쑥을 보면서
콩나물시루 삼발이 마냥 굽은 허리로 집안을 도시는데
한 해 한 번 마을에 약쑥 공양 베푸시는 할머님
머리 검불 허연 귓가로 앞집 며느리 새로 치는 꿀벌 소리가
저승마루인 듯 아득하게 이엉을 얹고
장독대 함박꽃 뚝 지는 날
테메운 몰두무 곁으론
지난해 장대비 소리 다시 후드륵
눈 따갑네 이 봄날
손금을 파고드는 따뜻한 쑥뜸 연기
할머님 저녁 끼니는 어떠실는지(그림 : 김련중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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