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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태일 - 가을 악견산
    시(詩)/박태일 2014. 9. 23. 00:12

     


    악견산이 슬금슬금 내려온다
    웃옷을 어깨 얹고 단추 고름 반쯤 풀고
    사람 드문 벼랑길로 걸어 내린다
    악견산 붉은 이마 설핏 가린 채
    악견산 등줄기로 돋는 땀냄새
    밤나무 밤 많은 가지를 툭 치면서 툭
    어이 여기 밤나무 밤송이도 있군 중얼거린다


    악견산은 어디 죄 저지른 아이처럼 소리없이
    논둑 따라 나락더미 사이로
    흘러 안들 가는 냇물 힐금힐금 돌아보며
    악견산 노란 몸집이 기우뚱 한 번
    두 번 돌밭을 건너뛴다

     

    음구월 시월도 나흘 더 넘겨서
    악견산이 슬금슬금 마을로 들어서면
    네모 굽다리밥상에는 속좋은 무우가 채로 오르고
    건조실에 채곡 채인 담배잎
    외양간 습한 볏짚 물고 들쥐들 발발 기는
    남밭 나무에 고랑으로 갈잎도 덮이고


    덜미 잡힌 송아지같이 나는 눈만 껌벅거리며
    자주 삽짝 나서 들 너머 자갈밭 지나
    검게 마른 토끼똥 망개 붉은 열매를 찾아내고
    약이 될까 밥이 될까 생각하면서
    악견산 빈 산 그림자를 밟아가다 후두둑
    산이 날개 터는 소리에
    놀라 논을 질러뛴다.

    (그림 : 김덕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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