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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하 - 옹이 속의 집시(詩)/김완하 2014. 8. 27. 23:58
상월초등학교 플라타너스 둥치에
딱따구리가 나무 파던 흔적 남았다
우듬지부터 둥치 따라 내려오다가
깊게 파인 구멍 하나 찾았다
나무의 옹이 아래 딱따구리는 둥지를 묻고
수없이 구멍 드나들며 하늘 물어오고
어둠을 길어 냈을 것이다
딱따구리가 밤마다 둥지 팔 때
허공 속에서는 목탁이 울었다
하늘에 별들도 그 소리에 귀를 열고
더 또렷이 빛이 났다
딱따구리는 나무의 가슴 길어 올리며
어둠을 파내 밤을 뚫고
끝내 한 칸의 새벽을 지어내
비로소 살아있는 한 채 집이 되었다
나는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어
까치발 들고 나뭇가지 밀어 넣어도
그렇다, 이 구멍은 끝내 닿을 수 없는 것이다
몇 날 밤 딱따구리 부리는 파고들어
플라타너스 옹이에 고인 어둠을 찍었다
나무의 멍든 가슴을 재워
허공이 지은 집 한 채
아직도 밤마다 어둠 속에서는
고요의 빗장을 푸는 딱따구리 살아 있다
(그림 : 서정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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