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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 봄이 씌다시(詩)/황인숙 2014. 7. 25. 11:28
노랑꽃들과 분홍꽃들과 갈색 덤불 위에
너의 연록빛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평화롭고 우아한 여린 초록이
내 눈에 씌였다.
보도 블록에도 버스표 판매소에도
마주오는 사람의 얼굴에도 지나가는 버스에도
건너편 유리벽에도 허공에도 하늘에도
너의 그림자가 어룽댄다.
세상이 너의 어룽 너머로 보인다.
그리고 이 소리는 무엇일까?
이것은 소리일까?
이 기분 좋은, 조용히 부풀었다가 잦아들곤 하는
이것은 너의 호흡
햇빛 속에 여려졌다 짙어지는
녹색의 현들.
오늘 나는
온종일 상냥하다.
너의 그림자 속에서.
휘늘어진 너의 가지들은
햇빛 속에서 주의 깊고 온순하게 살랑거린다.
내 마음은 그 살랑거림 속에서 살랑거린다.
너의 이파리들 속에 얼굴을 파묻고
오래도록 너를 껴안고 싶다.
너의 여림과 고즈넉함이
나의 몸에 배일 정도로 오래도록.
삶의 상냥함과 온순함을
꿈틀거리게 하는 봄나무.(그림 : 정봉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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