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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관영 - 짐승, 코가 긴
    시(詩)/시(詩) 2014. 7. 20. 20:56



    심심하면, 저는, 송아지 보러가요

    범수네 우사(牛舍)엔 들어가 보지 못했어요

    형수님 말씀이, 팔 때 보면 다 큰 소가 허공을 밟는 것 맨치로

    겅중겅중 걷지도 못하는 게 불쌍해 죽겠대요

     

    응달 마을 황씨 아저씨네 소는 새끼를 낳아서 엉덩이가 까칠해요

    아무래도 제 발길이 멈추는 곳은 유씨 아저씨네 송아지 앞이에요
    김이 물큰물큰 나는 여물 먹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해요

    느긋하게 허공을 씹는 듯한, 제 입의 침이 떨어지는 줄도 모르는

    고요의 되새김질 앞에서는 손이 잘, 안, 나가요

    황씨 아저씨네 소를 볼 때가 그래요

     

    여물 먹는 데 열중하는 송아지를 보면, 열중을 틈타 콧잔등이를 쓸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앞서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보면, 주둥이가 길다 싶기도 하고,

    턱이 길다 싶기도 하다가도, 콧구멍 벌름거리는 걸 보면 코가 길다는 생각 들어요

    정작, 콧등은 쓸지 못하고 뿔 사이 가마나 긁적대다 말지만,

    코가 긴 짐승은 아름답다는 생각, 진짜배기 웃음은 코로 웃는다는 생각 들어요

    콧등에 맺힌 땀처럼요

    (그림 : 김동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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