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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금용 - 담북장 햇살
    시(詩)/시(詩) 2014. 7. 10. 21:12

     


    한겨울 할머니 묘소엘 가면
    겨울 햇살에서 담북장 냄새가 난다
    고드름 굵게 쳐진 처마 아래
    김장철부터 시름시름 말려놓은 무청 시래기
    듬뿍 넣고 끓인 담북장에선
    할머니 곰삭은 팔십 평생 속울음 냄새가 난다


    대청마루 밑에 넣어둔 보랏빛 씨감자
    부엌 한 편에서 싹을 틔운 푸른 대파
    끓어 넘치는 뚝배기에서 송송 끓으면
    겨울 햇살도 입맛 다시며
    한 술 뜨는 숟가락에 서둘러 내리꽂힌다
    둥근 상 빽빽이 둘러앉아 수다 피지 말라고
    눈치 주던 어머니 앞에서 분주한 형제들 입질


    일 년 내 거둬들인 쌀가마랑 잡곡 가마랑
    새봄 서울로 공부 떠나는 아이들
    꽁무니에 붙여 딸려 보내고 나면
    꼭두새벽부터 소여물 끓이는
    할머니 이마에 식은 땀 쉴새 없지만
    한 뼘씩 커진 손자들 쑥대머리 너머로
    창창한 뭉게구름이 달리기를 한다

     

    굼뜬 겨울 햇살 끼어 든 침침한 아랫목에

    눈감으신 허리 굽은 할머니

    팔십 평생이 저토록 곰삭았을까

    (그림 : 한부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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