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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니 순창서 시집오시어
일만 벌였다하면 꼬라박는 아버지 꼴 보시고
다섯 새끼 가르치시느라, 봄이면
묵은 김장독 헐어 문전문전 다리품 파셨네
중앙시장 맨바닥에서 무더기 무더기 채소 파셨네
호각을 불며 순경이 들이닥치고
늘어놓은 오이 가지 깻잎들 순경 발길질에
사정없이 걷어차이고, 왜 이러냐
사람 먹는 것을 왜 걷어차냐
당신은 새끼도 안 키우냐 악 쓰시던 울 엄니,
집만은 안 된다고 이 땅만은 안 된다고
플라스틱 스레빠 한 켤레로 해를 넘기도 또 넘겼어도
쓰레빠만 닳았던 울 엄니 삶의 평(坪)수,
연탄화덕에 코 박고 싶다고 띄엄띄엄 애간장 녹으신
보리쌀 두어 됫박도 무섭게 알고 세월 건너오신 울 엄니
풍 맞으시어 병상에 누워계시네
못 믿을 큰자식 손을 붙잡고 비스듬히 웃으시네(그림 : 홍미옥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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