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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은 - 소와 함께
    시(詩)/고 은 2014. 6. 23. 11:22

     

     

    며칠 동안 건너마을 객토 품 파느라고 너를 돌보지 못했다
    바람도 불던 바람이 내 피붙이 같아서 덜 춥고
    여물도 주던 사람이 주어야 네가 편하지
    내가 말린 꼴 수북히 주고 더운 뜨물 퍼주니
    너는 더없이 흡족해서 꼬리깨나 휘두르는구나

    이랴 띨띨 밥 먹은 뒤 바깥 말뚝에 매어 두니
    소가 웃는다더니 바로 네가 좋아하는 것 알겠다


    외양간 쳐내어 쇠똥무더기 검불에 섞었다
    네 집 뒤쪽은 샛바람 막게 두툼두툼 떼적 치고
    남쪽으로는 비닐창 달아내어 볕조각 들게 했다
    따뜻한 날이라 송아지 두 놈 까불대며 다니며
    무우말랭이 널어 둔 멍석 밟고 마구 논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잠자리 깨끗하면 얼마나 좋은가
    그동안 네 엉덩이 누룽지깨나 덕지덕지로구나
    마른 똥 긁어 떼어내니 이놈 봐라 곧게 서 있다


    송아지 두 놈 논 쪽으로 먼저 나간 김에
    에따 너도 나도 개천 둔덕으로 놀러 나가자
    외양간에만 죽치고 서서 새김질 거듭하다가
    이렇게 마음 탁 터놓고 나오니 너 좋고 나도 좋다
    바람에 한 번 멋지게 감긴다 무슨 회오리바람이냐
    나와 너 단짝 동무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뜬다


    얼씨구 양지쪽으로 조금씩 돋은 풀도 반갑다
    이런 풀은 뜯지 말아라 네 새끼 송아지들 장난질한다
    나도 너도 흐뭇한 것 하나도 하나가 아니다
    햇볕 실컷 쪼여라 바람 쏘여라 바깥도 집안 아니냐
    내 너를 두고 말한다 소만한 덕 어디 있느냐
    견디기로는 사람 중에 백범이다 못 견디기로는 임꺽정이다

    가자 오랫만에 나온 바깥 기쁨 몽땅 가지고 돌아가자  

    (그림 : 장정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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