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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길이야 순하디 순하게 굽어서
누가 그냥 끌러둔 말없는 광목띠와도 같지요
산천초목을 마구 뚫고 난 사차선 저쪽으로
요샛사람 지방도로 느린 버스로 가며 철들고
고속도로 달리며 저마다 급한 사람 되지요
고향길이야 이곳저곳 지나는 데마다 정들어
또 더러는 빈 논 한 배미에 밀리기도 하고
또 더러는 파릇파릇 겨울 배추 밭두렁을 비껴서
서로 오손도손 나눠 먹고 사양하기도 하며 굽이치지요
삼천리 강산 고생보다는 너무 작은 땅에서
오래도록 씨 뿌리고 거두는 대대의 겸허함이여
자투리 땅 한 조각이라도 크나큰 나라로 삼아
겨우 내 몸 하나 경운기길로 털털 감돌아 날 저물지요
어느새 땅거미는 어둑어둑 널리는데
이 나라에서 왜 내 고향만이 고향인가요
재 넘어가는 길에는 실바람 어느 설움에도불현듯 어버이 계셔야 해요 그리운 내 동생들 달려오지요
(그림 : 안모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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