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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은 - 섬진강에서
    시(詩)/고 은 2014. 6. 23. 11:51



    저문 강물을 보라. 저문 강물을 보라
    내가 부르면 가까운 산들은 내려와서
    더 가까운 산으로
    강물 위로 떠오르지만
    또한 저 노고단(老姑壇) 마루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강물은 저물수록 저 혼자 흐를 따름이다.

    저문 강물을 보라.
    나는 여기 서서
    산이 강물과 함께 저무는 것과
    그 보다는 강물이 저 혼자서
    화엄사(華嚴寺) 각황전(覺皇殿) 한 채 싣고 흐르는 것을 본다.

    저문 강물을 보라.
    강물 위에 절을 지어서
    그 곳에 죽은 것들도 돌아와
    함께 저무는 강물을 보라

    강물은 흐르면서 깊어진다.
    나는 여기 서서
    강물이 산을 버리고
    또한 강물을 쉬지 않고 볼 따름이다.

    이제 산 것과 죽은 것이 같아서
    강물은 구례(求禮) 곡성(谷城) 여자들의 소리를 낸다.
    그리하여 강 기슭의 어둠을 깨우거나
    제자리로 돌아가서
    멀리 있는 노고단(老姑壇) 마루도 깨운다.
    깨어있는 것은
    이렇게 저무는구나.
    보라. 만겁(萬劫) 번뇌(煩惱) 있거든 저 강물을 보라

    (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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