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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동윤 - 만추(晩秋)
    시(詩)/임동윤 2014. 4. 24. 11:17

     



    벽촌 가는 길은 흙먼지 자욱한 길입니다
    산은 굽이굽이 물안개로 가려져 있습니다
    또 몇 굽이 돌아드는 비탈길에서
    쉭쉭 단내 풍기는 차를 잠시 쉬게 합니다


    백두대간 넘어온 바람이
    동해바다 짭짤한 소금기를 풀어놓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들이
    당신에게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섰습니다
    그러나 내겐 대수롭지 않습니다


    당신 향한 그리움이 구절초로 피어나고
    제 빛깔로 물드는 가을색만 또렷합니다
    발왕산 가랑이 헤집고 다니는 바람
    마른 억새를 베고 있을 때쯤,
    당신은 무덤에서 나와 서 계실까요


    비탈밭 화전 일구며 입추 지나 캐내던
    황토빛 고구마 밑뿌리도 실한가요
    산비탈 활활 태우던 마음 온전하다면
    고랭지 채소밭 가꾸겠다던 당신 소망은
    이제 땅 속에도 꽃을 피우겠지만
    모두가 떠난 빈집엔 누가 사나요
    산 숭숭 구멍 뚫린 마을은 그림처럼 남고
    밭은 기침소리만 허공을 맴돌겠지요
    당신에게로 가는 오직 한 길인 나전에서
    여량, 임계, 낯익은 이름들을 불러봅니다


    나는 외롭지 않습니다
    벽촌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흙먼지 풀풀 이는 비포장 길이지만
    언제나 그 길은 푸르게 열려 있으니까요

    (그림 : 정태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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