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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동윤 - 덕거리의 겨울
    시(詩)/임동윤 2014. 4. 24. 11:12

     



    울진행 막차는 끝내 오지 않았다
    사흘 밤 사흘 낮을 지새는
    눈발은 좀처럼 그치지 않고
    가마솥 쇠죽 쑤는 아궁이마다
    잘 마른 참나무장작 몇 덩이
    던져 넣으며, 나는
    신혼처럼 아득한 시간들을
    그리운 이름들로 불러 보았다

    초가지붕 추녀까지 덮을 듯
    통고산 멧돼지 배고픔으로 그냥 지쳐
    마을까지 내려올 듯
    눈보라 속 모든 길은 보이지 않고
    시작과 끝이 매몰되었다

    여섯 자 세 치 몸 빠지는 눈구렁 속
    우물길 찾던 아지매들 쿨룩쿨룩 잠들고
    가마솥마다 펄펄 끓어 넘치는
    옥수수 깡마른 대궁들
    활활 타오르는 참나무 숯불 위에
    번뜩이는 적의, 분노의 칼날이여

    옥수수 마른 대궁만 질겅질겅 씹어
    되새김질하는 부사리의 한숨도
    더러는 사는 일이
    퉁퉁 불은 통나무 쪼개는 일보다
    더 질기고 아프다는 것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가마솥마다 도토리가 삶겨서
    미움의 떫은맛도 가시고
    한 덩이 묵으로 눈 뜰 때쯤
    눈 무게에 겨워 나자빠지는
    소나무 잣나무여
    전나무 가문비나무여
    쿵쿵 허리 부러져 나자빠지는
    신음소리는 얕이 하늘 떠돈다

    꽁지 까만 새 한 마리
    눈 녹는 굴뚝 언저리에 숨고
    식어가는 아궁이마다
    잘 마른 참나무장작 몇 덩이 던져 넣으며
    밤새도록 나는,
    아픈 추억의 그리운 시간들을
    따뜻한 얼굴들로 지피고 있다.

    (그림 : 신재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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