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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눈물져 떠나온 고향집에선
이 여름도 봉숭아가 주머니를 부풀립니다.
간장 항아리 놓였던 자리에
잡초 무성한 마당귀 우물가에
화르르, 화르르
석류처럼 꼬투리를 터뜨립니다.
인적 끊긴 집 둘레로
고추잠자리만 비행할 뿐,
먼지 낀 헛간에는 녹스는 농기구들.
허물어진 돌담을 끼고
해바라기만 줄지어 서 있고
그 무표정한 그늘을 딛고
토실토실 물이 오른 봉숭아 몇 그루,
듬성듬성 버짐이 핀 기와집 처마 밑에
해마다 둥지 트는 제비와 놀며
흰색 분홍색으로
여름을 부지런히 피워올립니다.
그런 날,
어머님 손톱에도
문득 바알간 꽃물이 돕니다.(그림 : 안정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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