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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엽 - 배롱나무 꽃 그늘 아래시(詩)/이지엽 2014. 4. 8. 14:17
생이 아름다운 때가 있다면
필시 저런 모습일 게다.
귄 있는 여자의 눈썰미 같은 꽃
잘디잔 꽃술로 낭랑하게
예 예 대답하는
그러다 속상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혼자서 짜글짜글 애를 태우다
말간 눈물 뚝뚝 떨구는
화엄이나 천국도 그러고 보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환한 손뼉소리 끝에
온몸으로 내 사랑 밀물져 오는 여름 한낮
장엄이라든가 경건이라든가
그런 사뭇 딱딱해지는 것이 아니라도
흩지 마라 네 슬픔 흩지 마라 얼굴 검게 탄 바람이
여린 가지의 맨살 나붓이 쓰다듬고 가는
그 잠시에 있는 것
그러면 거기 수만 송이의 꽃들이
죄다 부르르 떨면서 수만 갈래의 길을
우듬지로 위로 받쳐 올리고
나무들은 혼신으로 몸 바깥에 길을 내면서
여름 한낮은 짱짱해지고 짱짱해져서는
이윽고 보여지는 한 틈으로
시원하게 소나기 한 줄금 뿌리기도
하는 것이니
완전한 사랑이란 이를테면 그
소나기 같은 것일 게야
목마름의 절벽에서 飛流直下하며
산산이 깨어지는 물방울
몸과 마음의 경계를 깨끗이 지우는 일
몸도 잊어버리고 몸이 돌아갈 집도 다 잊어버리고
그게 우수수 목숨 지는 것인 줄 다 알면서도
여름 내내 명옥헌 꽃 지는 배롱나무
여자의 환한 눈물이 그렁그렁하다.귄 있는(1연 3행) : 귀염성이 있는
'귄'은 '귀염, 귀염성'의 사투리입니다.
'귀염'은 사랑하여 귀엽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괴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일 것입니다.
'괴다'는 끌리는 데가 있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귀염성'은 귀염을 받을 만한 바탕이나 성질입니다.
'귄 있다'는 말은 '사랑스런 느낌이 들어서 귀엽게 생각되는 성질이 있다, 귀엽게 생각된다'라는 뜻입니다.(그림 : 설종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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