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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희 - 길을 보면 가고 싶다시(詩)/권선희 2014. 2. 21. 22:18
천천히 걸어가는 길의 뒷모습이나
황급히 사라지는 길, 치마꼬리를 향해 서 있었다
오랜 배웅의 시간
간혹 길은 바다로 첨벙 뛰어 들기도 했다
그럴때면 얼음공장 벽에 기대어
물살 가르고 튀어 오르는 길의 노래
따라 부르곤 했다
아무꽃도 피어나지 않는 시멘트 바닥에서
비린내 쪼아대는 햇살
햇살을 물고 한떼 새들이 날아오르면
다시 뭍으로 오른 젖은 길들은
숲으로 걸어갔다
길이 지나는 자리마다
겟멧꽃이 피고 마늘순이 노랗게 말라갔다
종꽃이 지고 뱀딸기가 익었다
할배는 먼 산으로 가고 아이는 더디 걸었다
그렇게 나는 길을 보내고 있었다
너른 등짝이 모퉁이를 돌아가는 내내
돌담이 붉었다
꽃을 주고 길이 또 간다
(그림 : 이완호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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