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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선희 - 매월여인숙
    시(詩)/권선희 2014. 1. 22. 21:39

     

    나 오늘 기필코
    저 슬픈 추억의 페이지로 스밀라네
    눈 감은 채 푸르고 깊은 바다
    흉어기 가장 중심으로 들어가
    목단꽃 붉은 이불을 덮고
    왕표연탄 활활 타오르는
    새벽이 올 때까지
    은빛다방 김양을 뜨겁게 품을라네

     

    작은 창 가득
    하얗게 성에가 끼면
    웃풍 가장 즐거운 갈피에 맨살 끼우고
    내가 낚은 커다란 물고기와
    투둘투둘 비늘 털며
    긴 밤을 보낼라네

    한 사내의 고기잡이는 잠시 그물을 거두어야 했다.

    ‘흉어기’이므로…. 하지만 사내는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슬픈 추억의 페이지’를 뒤적이고 있다.

    등이 켜진 골목길 어귀일 것이 분명한 여인숙에서 그는 ‘목단꽃 붉은 이불’과 ‘왕표 연탄’이 대변하는 피곤에 절어 있지만

    ‘은빛 다방 김양’이 있으므로 한시름 놓는다.

    밤은 길지만 아랑곳 하지 않을 터이다. 밤새 그는 그의 꿈을 하염없이 세어볼 것이다. ‘커다란 물고기’의 ‘비늘’을 털면서 말이다.
    잠시 쉬어가는 노동은 그에게 절망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비릿한 휴식이 그에게 주어진 전부이지만 그는 언제나 ‘푸르고 깊은 바다’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바다는 어둠이 아니라 ‘새벽’이기 때문이다. (이기철 시인) 

    (그림 : 박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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