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최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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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 그 여자의 낡은 사진시(詩)/최갑수 2014. 8. 29. 13:15
서랍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그 여자의 낡은 사진 귀퉁이가 다 닳은 구름 한 조각 비 묻은 귀밑머리 몇 가닥과 졸음에 겨운 희미한 쌍커풀과 그 여자의 얇은 여름 블라우스 점점이 박힌 푸르고 붉은 꽃무늬 가랑비 소삭이던 처마 밑 그 저녁의 일들일랑은 몇 구절 나지막한 휘파람으로나마 불러보든지. 돌아온다는 기약 같은 건 없었다네 (구름에 무슨 기약이 있겠나) 세상의 모든 기약이란 떠나가는 배의 희고 둥근 돛처럼 잠에서 덜 깨어 바라보는 목련꽃 가득한 새벽녘의 마당처럼 참으로 허무하고 또 슬픈 것임을 내 어찌 몰랐을까나 구름은 다 데리고 간다네 다 데리고 구름은 허공에 걸린 새소리를 지나 나울나울 목련나무 가지를 지나 구름은 아무 말 없이 스윽 팔짱을 한 번을 껴보고서는 창문을 넘어간다네 내 어찌 모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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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 야간 비행시(詩)/최갑수 2014. 7. 4. 20:39
세상의 모든 다짐이란 또한 사랑이란 저 별의 먼 빛처럼 얼마간의 덧없음을 전제로 한다는 것 그리고 너는, 그날의 사랑은 언제나 저만치, 내 기억의 저만치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 너에게로 가는 길은 언제나 밤이다 별의 물길, 쉼없이 아가미를 감빡이며 나는 지금 밤하늘의 가장 밝은 부분을 헤엄쳐 가고 있다. 별아, 너를 따라가겠다 내 기억이 기억하는 수많은 별들, 그리고 그 기억의 저편에서 깊고 환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을 추억이라는 이름의 높은 별자리, 그 속에 가파른 숨의 네가 있으니 열에 들뜬 시월의 그날들이 있으니 하지만 그대여 나는 알고 있다 언젠가 이러한 나의 생(生) 또한 이름 모를 어느 별의 희미한 빛으로 쓸쓸히 남으리란 것을, 하지만 결코 아쉬워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것 오늘도 나의 창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