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갑수 - 그 여자의 낡은 사진시(詩)/최갑수 2014. 8. 29. 13:15
서랍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그 여자의 낡은 사진
귀퉁이가
다 닳은
구름 한 조각
비 묻은 귀밑머리 몇 가닥과
졸음에 겨운 희미한 쌍커풀과
그 여자의 얇은 여름 블라우스 점점이 박힌
푸르고 붉은 꽃무늬
가랑비 소삭이던 처마 밑 그 저녁의 일들일랑은
몇 구절 나지막한 휘파람으로나마 불러보든지.
돌아온다는 기약 같은 건 없었다네
(구름에 무슨 기약이 있겠나) 세상의 모든 기약이란
떠나가는 배의 희고 둥근 돛처럼
잠에서 덜 깨어 바라보는
목련꽃 가득한 새벽녘의 마당처럼
참으로 허무하고
또 슬픈 것임을
내 어찌 몰랐을까나
구름은 다 데리고 간다네
다 데리고 구름은
허공에 걸린 새소리를 지나
나울나울 목련나무 가지를 지나 구름은
아무 말 없이 스윽 팔짱을 한 번을 껴보고서는
창문을 넘어간다네
내 어찌 모를까나
오늘은 밤새 새가 울고
그 새소리에 목련이
다 질 것을
내 어찌 모를까나(그림 : 한부철 화백)
'시(詩) > 최갑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갑수 - 신포동 (0) 2014.10.18 최갑수 - 버드나무 선창 (0) 2014.10.18 최갑수 - 야간 비행 (0) 2014.07.04 최갑수 - 고드름 (0) 2014.07.04 최갑수 - 지붕 위의 별 (0) 2014.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