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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 버드나무 선창시(詩)/최갑수 2014. 10. 18. 18:38
창문을 열면
바다만이 맹렬했다 오직
바다만이 간절했다
아랫도리를 벗은 채
아이들은 줄지어 선창을 달려가고
유리창마다 달라붙은 눅눅한 어항의 불빛들
휴일을 함께 지낸 사내들을 보내며
여자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서둘러 화장을 고쳤다
막막한 봄밤
소리치면 툭, 하고 끊어질 것만 같은 수평선
숨죽여 뱃고동이 울고
달뜬 숨소리 내뱉으며 버드나무들은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서러운 몸을 씻었다
무엇일까,
우리를 밤새 깨어있게 만드는
비린 냄새의 그것들은 무엇일까,
창문을 닫고 누우면
커다란 눈을 가진 심해어들이
환하게 불을 밝힌 채
나의 뜨거운 얼굴을 향해
꼬리치며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바다에 괴롭고
삶에 괴로운
서글픈 눈매의 까까머리 청년이었다(그림 : 김성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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