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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눈이 감기지 않았다
집어등도 이따금 파도에 끊기고
적적한 골목을 내다니는 것이
내 유일한 고단함인 양
어깨를 기울이고 문 밖으로 나서면
느티나무들이 소리내어 손가락을 꺾고 있었다
게처럼 짝짝거리며 하현이 가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바람이
잔잔히 별을 애무할 때
여자들은 온몸으로 일생(一生)을 반짝이며
방파제 너머로 가느다란 웃음을 던졌다
가을은 이곳에도 깊이 들었구나,아무도 잠들지 않는 자정의 거리
한차례 소란스러운 비가 훑고 지난 뒤
커튼을 닫고 사내들은 조용히 숨을 들었다 놓았다
나는 왜 뜨겁게 달아오르지 못하는가,노랗게 불을 흔들며 나를 희롱하는 창문과
되돌려지지 않는 걸음 사이로 수런거리며 안개가 모여들었다
밤에게 엿보이는 내 헐한 가슴에는
시시때때 알지 못할 이름을 외우는 목청이 큰 바다가 있었다신포동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포동
(그림 : 임종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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