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천양희
-
천양희 - 사람의 일시(詩)/천양희 2014. 1. 8. 18:05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리는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림 : 이수동 화백)
-
천양희 - 숨은 꽃시(詩)/천양희 2014. 1. 8. 18:04
다른 꽃밭을 꿈꾸며 어떤 꽃들은 둥근 꽃씨를 옮겼을 것입니다. 세상의 구석까지 꽃말을 전하고 꽃소식을 뿌렸을 것입니다. 꽃에게도 꽃의 마음이 있다는 것일까요. 늦은 꽃망울들 다투어 필 때, 우리는 무슨 속셈이 있어 꽃길을 따라간 건 아니었습니다. 제 속을 열고 웃고 있는 꽃잎들과 잎 속의 푸른 무늬들, 꽃술의 의미들. 꽃들은 왜 모두 다른 색깔을 가졌는지 꽃들은 왜 피고 지고 또 피는지 꽃잎 뜯어 꽃점을 치며 꽃같이 붉은 사랑 기다렸으나 봄길은 너무 짧고 저녁은 일찍 저물었습니다. 노고초 몇 포기 종일 고개 숙일 때 무명초도 애써 제 이름 적지 않습니다. 우주를 물들이는 한 꽃송이. 잎새마다 꽃등을 달고 찰랑댑니다. 꽃물결 꽃사태 꽃사태 꽃천지 속 꽃가마 타고 꽃구경이나 가고 말겠습니다. 꽃의 몸으로 환..
-
천양희 - 마음의 달시(詩)/천양희 2014. 1. 8. 18:02
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 마음이 또 생각 끝에 저뭅니다 망초(忘草)꽃까지 다 피어나 들판 한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 달빛이 너무 환해서 나는 그만 어둠을 내려놓았습니다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달 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바라는 만큼이나 간절합니다 무엇엔가 찔려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것을 한 달도 반 꺾이면 보름이듯이 꺾어지는 것은 무릎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을 들고 달빛 아래 섰습니다 들숨 속으로 들어온 달이 마음속에 떴습니다 달빛이 가시나무 울타리를 넘어설 무렵 마음은 벌써 보름달입니다 (그림 : 심만기 화백)
-
천양희 - 물에게 길을 묻다 수초들시(詩)/천양희 2014. 1. 3. 22:41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물속에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물속에서 물만 먹고 살았지요 물먹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물보라는 길게 물을 뿜어 올리고 물결은 출렁대며 소용돌이 쳤지요 누가 돌을 던지기라도 하면 파문은 나에게까지 번졌지요 물소리 바뀌고 물살은 또 솟구쳤지요 그때 나는 웅덩이속 송사리떼를 생각했지요 연어떼들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러다 문득 물가의 잡초들을 힐끗 보았지요 눈비에 젖고 바람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生도 물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건 물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물먹고 산다는 것은 물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물먹고 살수록 삶은 더 파도쳤지요 오늘도 나는 물속에서 자맥질하지요 물같이 흐..
-
천양희 - 물에게 길을 묻다 2 참는다는 것시(詩)/천양희 2014. 1. 3. 22:40
세상의 행동중에 참는게 제일이라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무슨일이든 참기로 했지요 날마다 참으면서 일만 하고 살았지요 참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살 길은 갈수록 구불텅거리고 살림은 출렁대며 흔들렸지요 누가 고해(苦海)속에 뛰어들기라도 하면 파문은 나에게까지 번졌지요 그때 나는 절벽에 매달려 사는 가마우지 새들을 생각했지요 둥지없는 무소새를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문득 길가의 무명초들을 힐끗 보았지요 발밑에 밟히고 바람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일 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참으면서 사는 일이었지요 그때서야 힘든것이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힘들게 산다는 것은 힘쓰고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참고 살수록 삶은 더 굽이쳤지요 오늘도 나는 인파속에서 자맥질하지요 힘껏 ..
-
천양희 - 물에게 길을 묻다 3 사람들시(詩)/천양희 2014. 1. 3. 22:39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이라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살기 위해 일만 하고 살았지요 일만하고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요 일터는 오래 바람 잘 날 없고 인파는 술렁이며 소용돌이쳤지요 누가 목소리를 높이기라도 하면 소리는 나에게까지 울렸지요 일자리 바뀌고 삶은 또 솟구쳤지요 그때 나는 지하 속 노숙자들을 생각했지요 실직자들을 떠올리로 했지요 그러다 문득 길가의 취객들을 힐끗 보았지요 어둠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똑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사람으로 살수록 삶은 더 붐볐지요 오늘..
-
천양희 - 생각이 달라졌다시(詩)/천양희 2013. 12. 9. 18:18
웃음과 울음이 같은 音이란 걸 어둠과 빛이 다른 색(色)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 내 음색(音色)이 달라졌다 빛이란 이따금 어둠을 지불해야 쐴 수 있다는 생각 웃음의 절정이 울음이란 걸 어둠의 맨 끝이 빛이란 걸 알고 난 뒤 내 독창이 달라졌다 웃음이란 이따금 울음을 지불해야 터질 수 있다는 생각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처럼 나는 골똘해졌네 어둠이 얼마나 첩첩인지 빛이 얼마나 겹겹인지 웃음이 얼마나 겹겹인지 울음이 얼마나 첩첩인지 모든 그림자인지 나는 그림자를 좋아한 탓에 이 세상도 덩달아 좋아졌다 (그림 : 강근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