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박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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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 - 사는 게 지랄 맞을 때면 풍물시장에 간다시(詩)/박제영 2017. 8. 22. 23:43
풍물시장에 가면 이놈은 녹슨 쇠 같고 저년은 낡은 징 같고 이놈은 해진 북 같고 저년은 휜 장구 같고 하여튼 고물 같은 연놈들이 초저녁부터 거나해서는 쇠 치고 징 치고 얼씨구 절씨구 북 치고 장구 치고 지화자 좋을씨구 신명 나게 풍물을 치는 거라 박 형도 한 잔 받어 사는 게 뭐 있남 쇠 치고 한 잔 징 치고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왕년에는 말이야 왕년에는 말이야 왕이었던 시절 안주로 씹다 보면 쇠가 되었다가 징이 되었다가 암깽 수깽 얽고 섥고 북이 되었다가 장구가 되었다가 묶고 풀고 으르고 달래고 왕이나 거지나 밥 먹고 똥 싸고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을씨고 그랴 사는 게 뭐 있남 사는 게 참 지랄 맞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풍물시장에 간다 (그림 : 조경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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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 - 오십세 김씨 이씨 박씨 표류기시(詩)/박제영 2017. 1. 17. 15:32
의미 없는 하루 또 하루 그날이 그날인 비루한 날들 한잔 할까 김씨가 이씨를 부르면 한잔 하자 이씨가 박씨를 부르네 빈 노트를 가득 채웠던 별과 달과 구름의 푸른 문장들은 어디로 갔나 술이나 마셔 김씨가 이씨에게 술을 돌리면 술이나 마시래 이씨가 박씨에게 술을 돌리네 낡은 기타 하나로 불러내었던 별과 달과 구름의 붉은 음악들은 어디로 갔나 노래방이나 갈까 김씨가 이씨를 꼬시면 노래방이나 가지머 이씨가 박씨를 꼬시네 의미 없는 하루 또 하루 그날이 그날인 공허한 날들 한잔 할까 이씨가 김씨를 부르면 한잔 하자 김씨가 박씨를 부르네 사랑인 줄 모르고 사랑에 젖었던 별과 달과 구름의 푸른 문장들은 어디로 갔나 술이나 마셔 이씨가 김씨에게 술을 돌리면 술이나 마시래 김씨가 박씨에게 술을 돌리네 이별인 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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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 - 노루목고개시(詩)/박제영 2016. 11. 6. 14:53
날이 저물고 달도 지면 거기가 깜깜절벽이 돼불거든 그럼 귀신도 못 넘는다는 게 노루목고갠데 장돌뱅이들은 용케도 넘어오거든 그게 말이지 장돌뱅이들만 아는 별길이 있었어야 그 별길을 따라 넘는다는 거지 근데 젊은 양반이 노루목은 왜 찾는 겨 지금은 노루목고개 업서야 영동고속도로 생기믄서 싹둑 잘렸자녀 별들을 헤아려 캄캄한 노루목고개를 넘었다는 장돌뱅이들 별, 별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는 봉평 장터는 이제 없다 노루목고개도 없고 장돌뱅이도 이제 없다 고속도로와 네온불빛과 대형마트가 있는데 인터넷과 스맘트폰과 내비게이션이 있는데 누가 머언 별을 헤겠는가 누가 별들에게 길을 묻겠는가 노루목고개가 묻혔다는 영동고속도로 갓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밤하늘의 별을 헨다 고향을 묻는다 (그림 : 백중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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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 - 빙신, 빙신맹키로시(詩)/박제영 2016. 11. 6. 14:51
핵교 댕길 땐 빌빌거리던 자슥이 돈을 허벌라게 써대야 아조 돈지랄을 해대는디 그래도 우짤겨 그 비싼 한우를 언제 배부르게 묵어보간디 자랑질은 또 얼매나 느자구 없이 해대든지 끝날 때까지 기냥 자랑질을 해대는디 속 맴이야 찜찜하니 환장 해부려싸도 우짜겠어 지가 돈을 낸다고 하는디 맞춰줘야지 근디 한우라꼬 괴기가 쫄깃하니 만나긴 만나데 니기미! 거기까정은 그렇다 쳐도 글마가 늦었응께 택시 타고 가라고 돈을 주잖여 그까적 이만 원, 받질 말았어야 했는디 빙신맹키로! 지금 생각하면 쪼까 거시기 해부러야 그래도 늬는 알지? 점례 늬 알지? 느그 남편 아즉 안 죽었어야, 나 안 죽었당께! (그림 : 고찬규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