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목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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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필균 - 내 마음에 연등을 달고시(詩)/목필균 2014. 5. 17. 01:13
여린 바람에도 흔들리는 마음 힘겹게 부려놓는다. 법당으로 들어서는 가지 많은 나무 몸에서 나는 절은 때 향을 피워 가리고 백 팔 배로 머리 속을 지운다 합장하는 두 손 꿇어앉는 두 무릎 바닥에 닿은 백 여덟 번의 이마들 탐욕을 먹으면 탐욕을 잘라내고 분노를 만나면 분노를 비워내고 미련을 행하면 미련을 쓸어내고 미움을 마시면 미움을 몰아내고 사랑을 품으면 사랑을 풀어내고 스치는 바람에도 베이는 아린 상처가 무성하게 자란 잡초로 뽑혀지고서야 촛불로 밝혀지는 정좌된 마음 마음의 거울 맑게 닦이면 눈부신 오월의 햇살 속으로 처마 끝 풍경마다 방생의 소리를 낳는다 (그림 : 한희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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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필균 - 아카시아를 위한 노래시(詩)/목필균 2014. 5. 17. 01:08
가자. 이젠 기다림도 소용없어 만개한 오월이 너를 끌고 더 길어질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 걸 쪼로록 쌍으로 줄지어 펴진 잎새 사이 총총히 하얀 꽃 숭어리 흐드러져도 떠날 사람 다 떠난 텅 빈 시골길 네 향기 분분한들 누가 알까 가자. 눈먼 그리움도 소용없어 우거진 초록이 너를 안고 더 슬퍼질 추억 속으로 들어갈 걸 잉잉대는 꿀벌 날갯짓 바쁜 꽃잎 사이 까르르 웃어대는 하얀 향기 흐드러져도 잊을 건다 잊은 텅 빈 산길에 네 마음 젖었다고 누가 알까 (그림 : 정서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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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필균 - 둔치도 바람시(詩)/목필균 2014. 5. 17. 00:45
살랑 바람이 낙동강으로 흐르더니 동그랗게 동그랗게 물 위를 걷는다 시퍼런 갈대숲에 수런거리는 햇살 부옇게 피어오르는 물안개 휘리릭 휘리릭 이름모를 새소리 개망초 키 세우는 아침 푸르게 녹음 지던 날들 거슬러 올라 설 수 없는 정점으로 발자국 없이 돋아나는 기억의 편린들 약속도 없이 오고가는 바람 끝에 매달려 머무르는듯 흘러가는 길을 연다 둔치도(屯致島) :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에 있는 섬. 서낙동강 변의 하중도로 동쪽으로는 서낙동강이, 서쪽으로는 조만강이 흐른다. 본래 서낙동강과 조만강 상류에서 운반된 토사가 쌓여 만들어진 여러 개의 모래톱이 합쳐지며 형성된 섬으로, 곳곳에 수로가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갈대밭이 무성하였다. 대부분의 지역이 수면과 비슷한 고도의 저지대로 서낙동강의 수위가 높아지면 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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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필균 - 물치항에서시(詩)/목필균 2014. 5. 17. 00:39
어둠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집어등 켠 오징어 배가 별빛처럼 반짝이는 물치항 산다는 것이 저리도 적극적이고 진지한 것을 어둠을 밝히며 파도 위에서 목숨을 낚는 것을 내게 다가왔던 사랑은 파도 속 헤매다가 난파되어 버렸는데 가끔은 아주 가끔은 다 놓쳐버린 빈 그물 속 아득한 기억으로 찌르르 다가온다 내일이면 다시 돌아갈 집처럼 밤이 지나면 물치항으로 돌아올 배처럼 떠났던 기억 속에서 다시 돌아오는 부메랑같은 너의 흔적들 시월의 끝자락 바다는 속울음으로 뒤척이고 지워진 수평선 속으로 가을이 기울어간다 (그림 : 김성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