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강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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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첫사랑을 보러 가네시(詩)/강은교 2014. 1. 8. 18:37
비 오는 날이면, 허공을 걸어 첫사랑을 보러 가네 첫사랑은 향기로운 웃음을 흔들며 안개 뒤에 서 있네 내 온몸의 피는 첫사랑의 허파 속으로 달려가네 구름의 등과 안개의 무릎에 앉은 이끼들 사이로 벽을 향하여 벽 속에 걸린 등불을 향하여 꿈의 지느러미를 향하여 침묵의 중얼거림을 향하여 비 오는 날이면, 허공을 걸어 첫사랑을 보러 가네 첫사랑은 향기로운 웃음을 흔들며 빗방울 뒤에 서 있네 꽃들의 심장을 두드리네 처녀들과 함께 오 시간의 처녀들과 함께 (그림 : 김동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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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아무도 몰래시(詩)/강은교 2014. 1. 7. 19:19
이런 날에는 아무도 몰래 그 떨림을 만지고 싶네 빛을 향하여 오르는 따뜻한 그 상승의 감촉 이런 날에는 아무도 몰래 그 떨림의 문을 열어보고 싶네 문안에 피어 있을 붉은 볼 파르르 떠는 파초의 떨림 이런 날에는 아무도 몰래 그 떨림에 별똥별 하나 던져 넣고 싶네 닿을 듯 닿지 않는 그 추락의 별똥별을, 추락의 상승이라든가 추락의 불멸을 이런 날에는 아무도 몰래 떨리는 추락의 눈썹에 빗방울 하나 매달고 싶네 그 빗방울 스러질 무렵이면 돌아오는 귀이고 싶네. (그림 : 이승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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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우리가 물이 되어시(詩)/강은교 2013. 11. 20. 21:53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그림 : 백중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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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너를 사랑한다시(詩)/강은교 2013. 11. 16. 20:27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