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강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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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시(詩)/강은교 2017. 3. 21. 09:11
봄이 오고 있다 그대의 첫사랑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의 맨발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이 밟은 풀잎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이 나부끼는 바람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 위의 아침 햇빛이 꿈꾼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 위의 반짝이는 소리 곁으로 곁으로 맴도는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의 아침 햇빛의 꿈 엷은 살 속 으로 우리는 간다. 시간은 맨머리로 간다, 아무도 어찌할 수 없다. 그저 갈 뿐, 그러다 햇빛이 되어 햇빛 속으로 가는 그대와 오래 만나리 만나서 꿈꾸리 첫사랑 되리 (그림 : 김태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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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기차시(詩)/강은교 2017. 2. 3. 11:12
봄이 오면 기차를 탈 것이다 꽃그림이 그려진 분홍색 나무의자에 앉을 것이다 워워워, 바람을 몰 것이다 매화나무 연분홍 꽃이 핀 마을에 닿으면 기차에서 내려 산수유 노란 꽃잎 하늘을 받쳐 들고 있는 마을에 닿으면 또 기차에서 내려 진달래빛 바람이 불면 또또 기차에서 내려 봄이 오면 오랜 당신과 함께 기차를 탈 것이다. 들불 비치는 책 한 권 들고 내가 화안히 비치는 연못 한 페이지 열어젖히며 봄이 오면 여기여기 봄이 오면 당신의 온기도 따뜻한 무릎에 나를 맞대고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은난초 흰 꽃커튼이 나풀대는 창가의 의자에 앉아 광야로 광야로 떠날 것이다, 푸른 목덜미 극락조처럼 빛내며 (그림 : 신종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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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너무 멀리시(詩)/강은교 2015. 12. 4. 13:31
그리움을 놓치고 집으로 돌아오네 열려 있는 창은 지나가는 늙은 바람에게 시간을 묻고 있는데 오, 그림자 없는 가슴이여, 기억의 창고여 누구인가 지난 밤 꿈의 사슬을 풀어 저기 창밖에 걸고 있구나 꿈속에서 만난 이와 꿈속에서 만난 거리와 아무리 해도 보이지 않던 한 사람의 얼굴과 그 얼굴의 미세한 떨림과 크고 깊던 언덕들과 깊고 넓던 어둠의 바다를, 어디선가 몰려오는 먹구름 사이로. 너무 멀리 왔는가. 아니다, 아니다, 우리는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그리움이 저 길 밖에 서 있는 한. (그림 : 장용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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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그 집시(詩)/강은교 2015. 8. 9. 10:00
그 집은 아마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신혼 시절 제일 처음 얻었던 언덕빼기 집 빛을 찾아 우리는 기어오르곤 했어 손에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나는 두드렸어 그러면 문은 대답하곤 했지 삐꺽 삐꺽 삐꺽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빛이 거기서 솟아나고 있었어, 씽크 대 위엔 미처 씻어주지 못한 그릇들이 쌓여 있었지만 마치 씻어주지 못한 우리의 젊은 날처럼 쌓여 있었지만 그 창문도 아마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싸구려 커튼이 밤낮 출렁거리던 그 집 자기들이 얼마나 멀리 아랫동네를 바라보았는지를 그 자물쇠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자기들이 얼마나 단단히 사랑을 잠글 수 있었는가를 그 못자국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자기들이 얼마나 무거운 삶의 옷가지들을 거기 걸었는지를 어느 날 못의 팔은 부러지고 말았었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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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살그머니시(詩)/강은교 2015. 7. 31. 09:07
비 한 방울 또르르르 나뭇잎의 푸른 옷 속으로 살그머니 들어가네, 나뭇잎의 푸른 웃도리가 살그머니 열리네 나뭇잎의 푸른 브롯치도 살그머니 열리네 나뭇잎의 푸른 스카프도 살그머니 열리네 나뭇잎의 푸른 가슴호주머니도 살그머니 열리네 햇빛 한 자락 소올소올 나뭇잎의 푸른 줄기세포 속으로 살그머니 살그머니 걸어가네 나뭇잎의 푸른 가슴살을 살그머니 살그머니 쓰다듬네 나뭇잎의 푸른 스카프 폭풍에 펄럭펄럭 휘날리는데 나뭇잎의 푸른 가슴살 살그머니 살그머니 빙하로 걸어가는데 살그머니 살그머니 빙하를 쓰다듬는데 나뭇잎의 푸른 웃도리 나뭇잎의 푸른 브롯치 나뭇잎의 푸른 스카프, 나뭇잎의 푸른 가슴호주머니, 나뭇잎의 푸른 피톨들을 살그머니 살그머니 살그머니 감싸안는데 살그머니 너의 속살을 벗기고 가슴호주머니를 만지니, 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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