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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은교 - 너를 사랑한다
    시(詩)/강은교 2013. 11. 16. 20:27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너를 사랑한다.

    (그림 : 김동진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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