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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 - 메밀냉면시(詩)/시(詩) 2023. 3. 17. 08:37
겨울을 먹는 일이다
한여름에 한겨울을 불러와 막무가내 날뛰는
더위를 주저 앉히는 일
팔팔 끓인 고기 국물에 얼음 띄워
입안 얼얼한 겨자까지 곁들이는 일
실은 겨울에 여름을 먹는 일이다
창밖에 흰 눈이 펄펄 날리는 날 절절 끓는 온돌방에 앉아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 말아 먹으니 이야말로
겨울이 여름을 먹는 일
겨울과 여름 바뀌고 또 바뀐
아득한 시간에서 묵은 맛은 탄생하느니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 깊은 샘에서 솟아난
담담하고 슴슴한 이 맛
핏물 걸러낸 곰국처럼 눈 맑은 메밀맛
그래서일까 내 단골집 안면옥은
노른자위 땅에 동굴 파고 해마다 겨울잠 드는데
냉면은 메밀이 아니라
간장독 속 진하고 깊은 빛깔처럼
그윽하고 미묘한 시간으로 빚는 거라는 뜻 아닐는지
안면옥(부산 안면옥) :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4-1 (공평동 8-4번지)
매년 4월 1일 영업을 시작해 추석 연휴 전까지(9월 30일) 약 6개월만 영업하는 냉면 전문식당
(사진 : 네이버 보라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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