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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서 - 바닥의 습관시(詩)/시(詩) 2022. 12. 9. 16:05
바닥만 보고 걷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다.
발끝으로 허공을 톡톡 차고 걷다 보면
뒤꿈치까지 따라서 구름을 툭툭 찬다.
그러니까 발이 나를 가운데 두고 자기들끼리
밀고 당기는 동안 나는 앞으로 간다.
뒷발이 발끝으로 미는 동안 발꿈치는 내리막이다.
내 몸에는 그렇게 내리막과 오르막이
사이좋게 살고 있다. 내 몸속에 기거하는 이 오르막과 내리막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오래된 내 구두코가 뭉개지고
바람 소리 들려왔다.
구두 끝은 발톱처럼 둥글 뭉툭하다.
무엇 하나 아프게 발로 차 본 적 없다.
어쩌면 구두 끝이 뭉툭한 게 그래서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내 몸은 여전히 오르막과 내리막이다.
오르막길에서도 난 여전히 바닥만 보고 걷는다.
마치 물속을 걷는 것처럼 내 안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서로를 부드럽게 밀어주기도 한다.
때론 걸음을 멈추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내 얼굴을 보고 웃는다.
비로소 내가 온몸으로 걷는다.
집이 기까워질수록 담장 없는 골목 아래의 낮은 집들,
손바닥만 한 마당을 품은 집들의 살림살이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다 보인다.
멀리 도심의 불빛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골목길은 강가의 잔 물살처럼
내 몸에 닿는다. 가로등 불빛은
커다란 물방울처럼 맺혀 집들의 따뜻한
창을 바라본다.
살아가는 일이란 게 생각해 보면
눈물 나게 별거 아니다.
낡은 신발 한 켤레 불빛에 걸어 두는 일이거나
식구들의 신발 사이에 내 신발을
나란히 벗어 두는 일이다.
신발이 나와 등 돌리고 잠드는 동안
내 오르막과 내리막을 잠시 쉬게 하는 일이다.(그림 : 박용섭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