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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부엌에 까다 만 눈물 한 바가지 담겨있다
나이를 과속할수록 소음이 심한 남편이지만
웃으며 동승해주는 것이 고마워
모처럼 까다만 눈물을 대신 깐다
거친 흙 속에 걸음을 뻗고 쑥쑥 자라오른 흔적
이순으로 접어드는 우리 부부도 이제
성장이었던 뿌리와 줄기는 말라붙고 주먹만 한 결실로 남았다
툭, 던진 한마디에도 쉬 부스러지는 겉껍질
앞만 보며 참고 살아온 모래알 같은 기억 때문이다
단단히 엉겨 붙은 흉터 딱지를 벗겨내니
웅크린 아내의 속살이 비치고 울컥 눈이 아려온다
제 안으로 깊숙이 남편과 자식들을 껴안고
한 겹 두 겹 벗겨낼수록 작아만 가는
오늘 저녁 아내는
한 끼 행복을 위해 무슨 밥상을 준비하려 했을까
다 드러내지 못한 속내를 까며 어떤 그늘에 잠겨 흔들렸을까
손톱을 세워 껍질을 벗겨내야
겨우 맑아지는 하루
말없이 저를 벗기며 흘렀을 아내 대신
오늘은 내가, 한 바가지 눈물로 울어주었다
(그림 : 전도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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